[재테크] 트레이딩과 짤짤이

두물머리 천영록 대표님 글(22년)

여기 저기서 트레이딩이 취미가 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식/암호화폐) 오늘 줏어 들은 XX에 사나이답게 들어가서 YY% 먹고 나왔는데, 돈 벌기 쉽구만! 이런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사실 (1) 트레이딩이랑, (2) 짤짤이랑, (3) 투자랑은 관점이 완전히 다른데, 전직 트레이더로서 얘기하자면 트레이딩의 반대는 투자가 아니라, 짤짤이라는 사실.

적절한 도박은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기도 하고, 순간이나마 여러가지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하며, 그로 인해 생각을 넓혀주는 역할도 많이 한다. 어젯밤 10만원을 땄으면, 불로소득의 아름다움에 눈이 번쩍 뜨이는 역할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또 어젯밤 10만원을 잃으면, 나의 노동 가치에 대한 생각을 새삼 다시 해보게도 된다. 왜 젊은이들에게 사행성 도박을 막지는 못할 망정 방조하느냐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인 이상 한번씩 운명이라는 주사위 노름을 하며 유흥을 즐길 수도 있지 않겠느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짤짤이가 의미 있는 기간 동안 지속 가능한 수입을 벌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로또로 언젠가 신세를 벗어나겠다는 '상상'까지는 괜찮으나, 실제로 전재산을 로또에 담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멘탈 붕괴의 늪을 피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전재산을 운명에 맡기면 높은 확률로 멘탈 붕괴가 온다. 멘탈 붕괴가 임계점을 넘으면, 인간은 예측불허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어젯밤의 내가 소주 5병을 먹고 길거리를 비틀댔다면 당최 무슨 돌발 행동을 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손실로 인한 멘탈 붕괴는 거의 만취 수준의 판단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은 잘 연구된 사실이다. 도박에 손댄 사람 중 상당수가 가정을 내팽겨치고 집문서를 훔쳐서 밤새 노름을 하는 그 패턴을 떠올려보자. 불을 보듯 똥을 맛보듯 결과가 뻔하다. 해서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기 스스로 통제 못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술 취한 자신은 어쨌거나 믿을 수 없는 녀석이 아닌가.

전략이 없는 순수 운의 영역에서 짤짤이를 하다보면 도박 금액이 어느새 취한 듯이 커진다. 변동성에 중독되는 것이다. 하루에 10만원씩 움직이던 잔고를 50만원씩 움직이게 만들고 싶고, 100만원, 500만원, 1000만원,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거 쉽고 간단하게 일억씩 움직이고 싶은게 인간 마음이다. 이런 인간의 일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굳이 수년간 트레이딩 룸에서 경험을 쌓을 필요도 없다. 카지노에 가서 며칠만 사람들을 관찰하면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심리 상태에 처해있음을 알 수 있다. 스릴에 대한 중독, 외적 위협에 대한 중독, 그 위협에도 불과하고 비교적 몸에 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안도감, 때론 그 스릴을 이겨내고 얻는 작은 성취감, 모두 마약보다 강한 중독이다. 인간은 성취감을 갈망하잖은가. 노름은 인간이 도전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갈망의 그림자이다.

그리고 짤짤이를 하던 이들 중에 좋은 결과로 끝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령 10번 던져 6번 앞면이 나오는 동전이 내 것이라고 해보자. 60%의 확률로 돈을 번다고 말이다. 이런 동전을 가지고 카지노를 만들어도 8~90%의 사람은 돈을 전부 잃고 말 것이다. 왜? 어느 순간 흥분하여 무리하게 베팅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산이 날아가는데는 단 한번의 흥분과 불운이면 충분하다. 통계가 우리의 편이어도 우리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능력이 있다. 확률이 굳이 우리를 지옥으로 밀어넣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뛰어드니까.

생각해봤으면 싶은 확률이 있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면이 열번 연속으로 나올 가능성은 1/1024 라고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동전 앞면 열번 연속이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할 가능성을 50% 정도로 높이려면, 과연 몇판의 동전 던지기를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답은 719판이다. 여러분이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대한 예측을 하루에 10번씩 72일간 하면 중간에 최소한 한번쯤 10번 연속으로 맞출 가능성이 50%다. 본인이 천재 같이 느껴지겠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겐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 확률을 모르면, 전재산을 넣으라는 계시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앞으로 700 번의 짤짤이 중 한번은 열번 연속으로 틀릴 수 있다. 가능성은 50%. 그때 심한 우울증과 패배감을 느끼지 않도록 충분히 적은 돈으로 짤짤이를 치면 좋겠다.